우리들의 성장기
어제 우리반 녀석들 대여섯 녀석이 보충수업 시간을 땡땡이 쳤다. 그래서 아이들 모두를 교실에 남겨 10시까지 자율학습을 실시했다. 처음에는 일찍 집에 보내달라고 졸라대던 아이들이 뭔가 이상하게 변했다. 자율학습을 즐기는 듯한 모습이었다. 휴식시간 20분 동안 아이들은 운동장으로 나가서 축구를 하며 뛰어 노느라고 교실에 들어오는 것을 새하얗게 잊은듯 했다. 결국 교실에 일찍 들어와 있던 아이 하나를 시켜 모두를 교실로 불려 들여야만 했다.
처음 학교에 남기 싫다고 하던 아이들이 돌변한 이유를 깊이 생각하며 따져 보았다. 그리고 한 학생에게 물어 내가 내린 결론을 확인하였다. 아이들이 학교에 남아 공부를 하게 된 것을 즐거워 한 것이 아니라 학원을 가지 않게 되었다는 해방감 같은 것을 즐거워 한 것이었다. 아이들의 입장에서는 가장 합법적으로 학원 공부에서 벗어나 반 아이들과 수다 떨며 놀수있는 기회를 얻은 것이다. 물론 나의 의도는 다시는 아이들이 수없시간이나 보충 수업을 무단으로 빠지는 행동을 막아 보려는 것이었지만 본의 아니게 사교육의 굴레에서 잠시나마 아이들을 해방시켜준 결과가 되었다.
학교에서 아이들과 생활하면서 우리나라의 현실속에서 아이들을 부득이하게 공부만 하라고 다그치는 일이 대부분이지만 너무나도 자주 그 아이들이 가엽게 느껴질때가 많다. 아이들이 아무리 공부를 열심히 해도 통계학적으로는 자신들이 원하는 것을 이루기 보다는 실패를 경험해야 할 확률이 더 많은 것이 현실이다. 어차피 그렇다면 매 순간마다 덜 스트레스 받고 행복하게 살아 가는 것이 너 나은 삶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 사회와 문화는 그것을 결코 허용하지 않는다. 그래서 아이들이 힘들고 그 부모들이 힘들다.
요즈음 우리 딸의 일탈 행동이 많이 좋아짐을 느낀다. 어느날 내가 우리 딸 아이를 너무 지나치게 공부하라고 내몰지 않았나 하는 생각에 아이에게 그 짐을 덜게했다. 그랬더니 일탈 행동을 조금씩 멈추는것 같다. 아이들은 각자 자신들의 한계를 본능적으로 알고 있다. 하지만 어른들 특히 그 부모들은 자신의 아이들의 한계를 전혀 모른다. 아이들 자신이 느끼는 능력의 한계와 부모들이 자기 아이에게 기대하는 능력의 차이가 크면 클 수록 아이들은 부담을 크게 느끼게 되고 결국 그 부담감을 이겨내지 못하면 일탈 행동을 한다. 최근에 우리 아이들을 통해서 그 사실을 깨닫고 반성했다. 그리고 우리 아이들에게서 그 부담을 덜어 주기로 결심했다.
우리 아이들이 대학을 갈 수도 있고 못 갈 수도 있다. 이제 그것을 아이들 스스로에게 맡겨두련다. 아이는 부모가 지워준 기대라는 무게감 이전부터 자기 스스로 짊어진 삶의 무게에 힘겨워 한다. 이미 아이는 자신의 삶의 무게를 감당하느라고 힘겨워 하고 있는 것이다. 거기에 부모가 자신의 기대를 아이들에게 짐으로 떠넘기는 것은 너무나도 잔인하다. 이따금 불안한 느낌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우리 아이들의 인생이 걱정되기도 한다. 하지만 아이가 매일 매일 덜 힘들어 하고 행복하고, 그러면서 바르게 성장하는 길로 가기를 바라기로 했으니 참고 기다리자. "가이사의 일은 가이사인들에게 맡겨라"는 말처럼 아이들의 미래에 사회적인 성공 여부는 하늘에 맡기기로 하였다. 그것이 우리들 아이와 내가 함께 살 수 있는 길이다.
매일 매일 힘겹게 아이들과 소리치고 싸우고 설득하고 납득시키다 보면 아이들의 생각과 행동은 조금씩 긍정적으로 변한다. 그 과정에서 서로 오해도 발생하고 의견이 불일치 하는 일이 자주 일어나지만, 참고 기다리고 견디다 보면 어느덧 아이들이 변해 있음을 깨닫게 된다. 그것이 성장이고 가르침이다. 그리고 그 성장과 가르침은 나에게서 아이들에게로 향하는 일방적인 흐름이 아니라 서로 상호작용하고 그 과정에서 서로 커지고 넓어지는 그런 깨달음이다. 가끔 아이들의 일탈 행동에 공모자가 되어 보는 것도 나쁘지는 않다는 사실을 어제 우리 반에서의 일로 재 인식하게 되어 좋았다
이제 잠시후 나는 오늘 하루를 우리반 아이들과 우리학교 아이들과 보내기 위해 출근 준비를 해야한다. 한창 뛰고 활동며 성장해야 할시기에 매일 매일 좁은 교실안에 잡아두고 공부하라고 소리치는 나 자신과, 그것을 강요하는 사회 문화적 현실을 벗어날 수 없지만 그래도 이처럼 가끔 현실과는 다른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는 것에 감사 한다. 그러면서 조금이나마 우리 아이들의 짐을 덜어 줄 수 있게 노력하는 하루가 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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