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두나무 세 그루
8월 어느 주말에 산책을 하다가 상암고등학교를 지나치게 되었다. 아직 여름 방학중이고 주말이라 학교 운동장은 텅 비어 있었다. 이 학교는 담이 없는 것이 특색이다. 그래서 잠깐 들어가 아주 급하게 호두나무 사진만 찍고 바로 나왔다. 그 이유는 방학중의 주말이기는 하지만, Covid-19가 유행하는 마당에 개학하게 되면 어린 학생들이 공부하고 생활하게 될 교정에 오래 머물면 안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상암고등학교는 2008년부터 4년간 근무했던 학교다. 신설학교로 개설한 지 2년 차 학교라서 할 일이 정말 많았었다. 그해 필자는 1학년 담임교사를 담당하며 이 블로그를 만들어 활동을 시작했다. 학교 운동장은 작지만 지금도 여름에는 곳곳에 범부채 꽃이 예쁘게 핀다. 당시 상암고는 신설 학교라서 교정이 그렇게 넓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새로 옮겨 심은 나무들도 제대로 뿌리 내지리 못했고 여기저기 미완성된 모습이었다. 그래서 새 학기 시작하는 봄에 범부채 씨앗을 화분에 심었다가 모종해 옮겨 심었다. 그 씨앗들은 필자가 바로 전에 근무하던 학교에서 가을에 받아 보관하던 것이었다. 범부채는 한번 심어 놓으면 매해 봄에 다시 싹이 트고 자라 꽃을 피우는 다년생의 우리나라 토종 야생화다. 병충해도 별로 없고 거친 땅에서도 잘 자리기 때문에 특별하게 신경을 쓰지 않아도 꽃을 잘 피운다.
호두나무는 2010년에 동료 교사가 먹어보라고 준 호두알 4개를 심은 것으로, 하나는 싹이 튼 지 두 번째 해에 베어 없어졌다. 살아남은 3그루도 심은지 두 해까지는 가을에 밑동만 남고 베어졌다가 봄에 다시 새싹이 나와 자란 것이다. 그래서 그런지 한그루는 아직도 상대적으로 키가 작았지만 더 이상 베어지지 않을 만큼 밑동 줄기가 굵어졌고 컸다. 근처에 역시 필자가 씨앗으로 심었던 가래나무도 몇 그루 자라고 있었다.
어쩌면 현재 상암고등학교에서 근무하는 선생님들 대부분은 호두나무가 자라고 있다는 것을 모르고 계실 것이다. 아직 호두가 열매 맺기에는 어려서, 호두나무를 잘 알면서 교정을 관심있게 살펴보신 선생님이 아니라면 알아차리기 어려울 것이다. 물론 어린 학생들은 거의 알기 어려울 것이라고 생각된다. 세월이 흘러 가을에 호두가 열려 떨어지기 시작하면 자연스럽게 알려지게 될 것이다. 일 년에 한두 번 산책을 하며 지나칠 때마다 잠깐 들러 필자가 심은 것들을 살펴본다. 그리고 그 교정에서 만났던 학생들과 함께 만들었던 추억을 회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