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이야기(My Stories)

하얀 목련

etLee 2009. 4. 2. 21:46

 

 목련이 피고 개나리가 만발한 계절이 되었다. 하루하루 일상에 시달리다 보면 계절의 변화를 느끼지 못하고 그 하루를 보내는 날이 많다. 특히 푸른 나무 한그루 제대로 보기 힘든 도시의 거리에서는 더욱 더 그렇고, 아침 일찍 출근하여 온종일 실내 공간에서 생활하는 경우에는 계절을 잊고 사는 때가 더 많은 게 현실이다.

 

 어린시절 봄날이 되면 동네 골목에서 아이들과 술래잡기를 하거나, 자치기, 팽이치기와 같은 놀이로 해가 가는 줄 모르고 뛰어놀았다. 요즈음은 학원이라는 것 때문에 학교 수업이 끝나도 동네 골목이나 놀이터에서 뛰어노는 아이들이 거의 없지만, 1970년대 중반까지도 동네 골목에는 아이들의 뛰노는 소리가 가득했다. 그때에는 서울 도심지를 조금만 벗어나도 나무나 풀이 한껏 자라는 공터가 있었고 논과 밭이 흔히 눈에 띄었다. 그래서 가난했지만 행복했던 시절이었다.

 

 어쩌다 교실을 벗어나 운동장만 나가도 햇살과 바람이 봄을 말하고 있다. 조금만 주변을 자세히 살펴보면 계절의 변화, 즉 봄이 다가온 흔적을 발견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음은 왜 아직도 찬바람 쌩쌩부는 겨울인지 모르겠다. 아마 아직도 금년의 나의 일에 마음을 붙일 수 없어 그런것이라는 사실을 알지만 매일매일 일어나는 상황들이 마음을 자꾸만 흔든다.

 

 이미 주변에서는 하얀 목련이 피기 시작했고, 곧 얼마 지나지 않아 그 목련이 뚝뚝 떨어지게 될 것이다. 그러면 앙상했던 나무 가지에 연초록빛 새 잎들이 나고 햇살과 바람은 더욱 더 밝아지고 따뜻해질 것이다. 머리카락 한가닥 더 남아있고, 흰 머리칼의 숫자가 하나라고 더 적을 때 마음에 희망과 꿈을 잃지 않도록 노력해야겠다. 하얀 목련에 마음 뭉클해지고, 노란 민들레 꽃에 감동하는 그런 마음이려고 해야겠다.

 

 사람의 삶이라는 것이 한 순간에 기뻐하기도 하고 한 찰나에 불행해지기도 한다. 그런데 그 경계선은 결코 높지도 않고 넓지도 않다. 행복과 불행의 경계를 정하는 것 역시 한 순간의 마음 가짐에 달려 있다. 오늘은 봄이다. 아무리 암울하고 추웠던 겨울을 났어도 봄에는 어김없이 새 생명들이 생겨나고 피어난다. 인생이라는 것도 때에 따라서는 겨울을 맞이하기도 하고 봄을 맞이하기도 한다. 지금이 아무리 힘들고 모진 겨울일 지라도 봄은 결국 오게 되어있다. 그것이 세상 돌아가는 이치가 아닌가?

 

 오늘 우리반 녀석들 중 몇 녀석이  땡땡이를 쳤다. 고3이나 된 녀석들이 그런다. 지금까지 못된 버릇이 습관이 되어 자기 자신의 통제력도 별로 없이 마음 내키는 대로 생활하는 녀석들이 몇 있다. 그런 녀석들에게는 고3이라는 상황이 별로 특별한 것이 아니다. 한창 예민하고 힘든 상황에 처한 다른 학생들에 대한 배려도 별로 없이 그렇게 행동한다. 그러니 담임교사로서 나름대로 자신의 목표를 향해 가는 대다수 학생들을 배려하고 영향을 덜 미치게 하려니 힘들지 않을 수 없다. 그러니 더욱더 봄을 느껴야겠다. 고통을 참고 자신의 미래를 준비하는 다수의 아이들을 위해서라도 그래야겠다.

 

 그 녀석들 언제 한번, 어린 시절의 나처럼  공부라는 것에 얽매임 없이 정말 자유롭게 힘껏 뛰어놀아본 적이 있겠는가? 시절을 잘못 타고나서 눈만 뜨면 공부해라 하며 줄 세우고, 그 줄에 따라 평가하는 세상에서 태어나고 자랐으니 마음이 얼마나 힘들겠는가?

 

 지금도 여기 자습실에 앉아 공부하는 아이들이 있다. 그 아이들 곁에서 나는 이렇게 글을 쓰며 생각에 잠겨 마음을 정리한다. 오늘 땡땡이친 녀석들 지금 어디에서 무엇을 할까? 그 녀석들도 나름대로 삶의 무게가 버거워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지금의 내 마음 보다도 수천수백 배 힘들어할 것이다. 그러니까 땡땡이쳤지.... 

 

                                                        2009년 4월 2일 밤 9시 55분 자습실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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