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의 미소가 해맑았다. 키가 크고 건강해 보였다. 무엇보다도 우리 딸과 같은 해에 태어나서 그 아이의 후원자가 되기로 했다. 밤 10시쯤 집에 도착해 보니까 우편물이 하나 도착했다. 그 아이의 신상이 내용중에 인터넷 상에는 알 수 없었던 부분이 있었다. 키가 143cm에 몸무게 29kg이란다. 같은 나이의 우리 딸 녀석 키가 169cm에 60kg이니까 엄청난 차이를 느낄 수 있었다. 그 나이에 그 정도의 신체 발달 수준이라면 우리나라로 치면 1960년대의 아이들의 모습과 비슷하다고 생각된다. 사진으로 보여지는 모습에서 그 아이가 힘겨워 보이는 모습은 오로지 슬리퍼를 신고 있던 발이 비위생적으로 보였다는 것뿐인데, 그래서 그녀석을 선택 했는데, 너무 잘한 선택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의 마음이 맑고 깨끗하면 표정이 부처의 모습이 된다. 현실의 삶이 아무리 힘들고 고통에 시달린다 해도 마음이 행복하면 입가에 늘 미소가 담겨있다. 그래서 아이들의 표정이 늘 부처의 모습이다. 한동안 PeterPan은 너무나도 평범한 그 진실을 잊고 살아온것 같다. 그나마 최근에 그 사실은 인지하고 매일 매일 나름대로 잊혀졌던 미소을 되 찾는 노력을 한다. 시골 나무로 만든 허름한 집에서 힘겹게 살아가는 소녀의 미소보다 못한 찌푸린 얼굴로 살아온 모습이 부끄럽다.
어린 시절 아무것도 모르고 학교에 갔다가, 아무것도 모르고 집에 쫓겨온 기억이 생생하다. 나중에 깨달은 일이지만 몇백원 안되는 육성회비라는 것을 안내서 어머님에게 받아오라고 선생님이 어린 나를 쫓아 보낸 것이다. 그래도 그때가 좋았다. 세상 힘든것 모르고 살았으니까. 꿰맨 옷 입고 구멍난 양말에 검정 고무신 신고 온 동네를 뛰어다니면서도 그때의 얼굴에는 웃음이 떠나지 않았던 것 같다. 그땐 세상이 다 그런줄 알았다. 이제 50줄은 넘어선 나이가 되었고, 세상 모든 것이 다 그런줄 알았으니 어린 마음을 찾아야 겠다.
아침 학교 등교길에 집집 문앞에 펼쳐지는 모습이 있었다. 부모 잃고 집 잃은 어린 아이들이 찌그러진 깡통 하나씩 들고 밥달라고 외치는 모습 말이다. 그때엔 어린 마음에 거지라고 놀리기도 했다. 부끄러운 짓이라는 사실도 몰랐다. 요즈음 밤 자정 무렵이 되면 도심지 지하철 역마다 사람들이 몰려든다. 박스와 허름한 신문지 들고 사람들이 모이는 가운데 한 구석에서는 벌써 세상일 통달하신 분들의 술 잔치가 벌어진다. 아마 매일 밤마다 이 세계적인 도시 서울 한복판에서 볼 수 있는 그런 모습이다. 어린 시절 아침마다 골목길에서 펼쳐졌던 그 모습과, 지금의 그 못습에 차이가 얼마나 있겠는가. 차이가 있다면 지금 PeterPan이 그 모습을 보고 손가락질 하고 놀려대는 짓을 안한다는 것뿐이다.
그렇게 그렇게 세상은 반복된다. 각각의 사람들은 자신의 삶이 특별나고 다른 그런 삶이라고 하지만 큰 눈 뜨고 바라보면 별반 다를게 없다. 그러니 매일 매일 행복한 마음으로 살아가는 게 좋다. 별로 특별나지도 않은 삶을 살아가며 뭘 그렇게 얼굴 찌푸리고, 뭘 그렇게 이루겠다고 욕심을 부릴건가. 그저 마음 자꾸 자꾸 비워가며 하루를 맞이하면 편하고 행복한데 말이다.
아이들 얼굴에서 미소가 떠난 세상이 더욱 더 희망이 없는 그런 세상이고, 그래서 우리는 그런 세상이 되지나 않을까 하고 두려워 해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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