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 EBS에서 <정의>를 주제로한 하버드 대학에서의 강연을 방영했다. 그 강연을 꼭 보고 싶었지만 일상 생활에 얽매여 살다보니 한번도 제대로 본 적이 없어 아쉽다. 실로 너무 오래동안 잊혀졌고, 그래서 일상 생활에서 별로 쓰여지지 않았던 말이 아닌가 한다. 젊은날 대학 캠퍼스에서 벤취에 앉아 쓴 커피 마시며 그렇게 외쳐 댔던, 그래서 한동안 화두로 여겨질만큼 자주 쓰였던 단어가 이처럼 생소하고 낯설게 느껴지는 이유는 그 만큼 현실의 삶에 휩쓸리며 살아왔다는 반증이다.
오늘 아침 조회 시간에 학생들에게 <정의>라는 말을 많이 했다. 비록 나의 삶은 그렇게 정의롭게 살아온 것이라고 생각 되지는 않지만 그래도 teacher로서 그것의 중요성을 가르치고 싶어서 였다. 요즈음 학교 교육이라는 것이, 입시 지상주의의 거센 회오리 바람에 시달려서 진실, 혹은 정의와 같은 것을 말할 기회가 거의 없다. 심지어 학생들에게 읽으라고 추천하는 독서 목록 조차도 입시에 관련된 것들로 점철 된다는 현실 속에서 정의를 외친다는 것은 지적 사치일 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반 학생들에게 열심히 공부해서 어른이 되어 힘이 생기고 영향력이 생기면 다른 사람들을 위해 그 영향력과 힘을 발휘하라고 말했다. 가끔 힘들고 어려운 사람들을 보면 그들을 배려하고 도움이 되는 일을 하라고 했다. 그리고 그것이 정의로운 일이라 했다.
자본주의가 최 첨단으로 발전한 현대 사회를 살아가면서, 어쩌면 원시 자연의 숲속에서 치열하게 펼쳐지는 생존경쟁 보다도 더욱더 치열한 오늘의 한국 사회에서 살아가면서 진실이라든지 정의 같은 개념을 염두에 두고, 또한 그것을 추구하며 살아가는 것이 얼마나 힘들고 외로운 길인지는 너무 잘 알고있다. 어떤 경우에는 그렇게 살아가는것 자체가 소외를 불러 일으키기도 하고 사회의 주변인으로 전락되게 하기도 한다. 그러니 그런 삶을 요즈음의 학생들에게 말하며 그렇게 살아가라고 요구하는 것 자체가 무모한 짓이고 만용이다. 이처럼 현실을 잘 알면서도 그렇게 말하는 이유는 단하나, 난 teacher이기 때문이었다.
불과 몇분전 만해도 나는 어린 학생들 2명과 교정 벤취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다 왔다. 그 아이들의 생각, 그 아이들의 고민과 현실에 대한 대화를 나누었다. 하지만 teacher로서 내가 그들에게 해 줄 수 있는 말이 거의 없었다는 것이 서럽다. 하얗게 존재하는 사회 현실속에서, "저같은 사람도 남은 시간 동안 열심히 하면, 원하는 대학에 갈 수 있을까요?"라는 질문에 겨우 "나도 해봤으니까 너도 할 수 있을 거야"라는 답뿐이었다. 그 짧은 대답속에 내재되어 있는 수없이 많은 고통과 인내 그리고 희생의 시간들에 대해서는 한마디 설명도 못하였고, 그 많은 고통과 인내, 희생의 댓가가 어쩌면 "실패"라는 한 단어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생략 할 수 밖에 없었다.
우리는 모두 대학 입시라는 열병에 걸려 있다. 그래서 온전한 정신으로 우리의 주변을 돌아 보고, 살펴볼 겨를이 없다. 그저 거의 맹목적으로 앞으로 앞으로 달려갈 뿐이다. 마치 줄에 매달려 타인의 의지대로 살아 가는 꼭두각시 인형처럼 그렇게 내 달린다. 오늘 잠시동안이지만 제정신으로 살았다. 아니 잠시 미쳤다고 말할 수 있다. 아이들에게 "정의"에 대해 말하는 순간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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