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가 되면 사람들은 보통 지난 한 해를 반성하고 오는 한해를 계획하거나 뭔가 새로운 것을 시도한다. 금년 한 해가 시작된지도 어느덧 일주일이 지나고 있다. 그런데 나는 아직도 아무것도 정한 것이 없다. 그냥 지난 한 해의 삶의 연장선상에서 머물며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2021년 새해를 맞이하여 지금까지 여유를 갖고 한 해 동안 뭘 할 것인지 깊이 생각해볼 시간이 없었다.
새해 첫날에는 혼자 공부하는 아들 녀석 자취방을 찾았다. 집사람이 새벽녃에 갑자기 새해 첫날 아들이 혼자 지내는 것이 안쓰럽다며 다녀오자고 해서 당일 치기로 다녀왔다. 군을 전역하고 대학 2학년에 복학해서 거의 온라인 강의 듣는 것으로 소중한 대학 생활, 한 해를 보낸 녀석이다. 군 생활 2년 동안 철이 들어 나름대로 인생의 목표를 설정해서 전에 없이 열심히 공부해서 학점을 엄청나게 향상했고, 금년에는 전공 관련 자격증을 꼭 획득하겠다고 혼자 운둔 생활하듯이 조그만 아파트에서 공부만 하는 모습이 대견스럽다. 아침 시간에 아들 집에 도착해서 집사람은 주방에서 식사 준비를 하는 동안 나는 부지런히 아들 방 대청소를 했다. 식사가 끝나고 우리 가족은 근처 절에 가서 쌓여있던 눈을 밟으며 산책을 하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튿날 집사람이 또 갑자기 딸과 손녀딸을 데리러 가자고 한다. 월요일에 손녀딸 예방주사가 예정되어 있었고, 둘째 손주를 임신한 딸의 정기 검진이 예약되어 있어 일요일에 데리러 가기로 되어 있었다. 그런데 연말 연초를 시부모와 지내기 위해 시댁을 방문한 딸과 이제 갓 돌이 지난 손녀가 밤에 잠을 거의 못 잤다는 것이다. 결국 우리 부부는 아침 일찍 출발해서 북한산 국립공원에서 1시간 정도 산책을 마친 다음 딸네 집으로 가서 오후에 딸 모녀를 데리고 왔다.
최근 일주일 동안의 나의 하루는 딸내미가 손녀를 안고 거실로 나와 나에게 안겨주는 것으로 시작한다. 아기 우유부터 먹이고, 부지런히 아침 먹고, 집사람 출근하면 설거지하고, 집안 정리가 끝나면 아침 세면을 한다. 오전 11시 전후에 오전 낮잠을 자던 손녀가 깨어나기 전까지 부지런히 영어 말하기 듣기 연습을 하고 오후 2-3시까지 손녀를 돌본다. 운 좋게 오후에 손녀가 잠이 들면 잠시 틈을 내서 오전에 이어 영어 듣기 말하기 연습을 하게 된다. 하루 종일 집안일에 손녀 돌보느라 허리도 아프고 어깨도 아프지만 틈틈이 시간이 나면 영어 말하기 듣기 연습을 할 수 있는 것에 감사하며 지낸다. 그리고 이렇게 힘겹게 딸을 쉬게 하면서 내가 수고하면 4월 초에 손자를 더 얻는 축복이 기다리고 있으니 좋다.
나의 하루의 일과는 저녁 7시쯤 딸아이가 손녀를 씻기고 재우는 동안, 그때쯤 하루 일과를 마치고 퇴근한 집사람이 집에 돌아오면서 끝을 맺는다. 이제 내가 잠들 때까지는 나만의 시간이 된다. 하루 일과의 마지막으로 부족한 영어 공부를 조금 더 한 다음에 잠시 TV 시청을 하다가 잠든다.
가끔은 세상 살아가는 것이 그렇게 크게 의미 있다 거나, 중요한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그냥 주어진 시간 동안 나름대로 열심히 살아가면 그만이라는 생각이다. 세상 일에 의미를 부여하는 순간 마음속에서는 욕심이 생기고, 모든 것들에 집착하게 되는 것 같다. 그래서 요즈음에는 하루하루의 삶에 의미를 부여하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매 순간마다 닥치는 대로, 생각하지 않고 그냥 행하면서 살면 된다. "하루에 4번 이상 설거지하면 어떻고, 매일 세탁기 돌려 건조대에 빨래를 널면 어떻단 말인가. 그냥 하면 되는 것이다. 어차피 그런 일도 안 하면 뭘 하면서 살겠는가?"
얼마 전 지인을 만나 산책하면서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 었다. 아직도 영어 공부하는 나에게 "뭣 하러 지금도 그렇게 공부해요? 평생 영어 선생 하다가 퇴임한지도 벌써 2년이 다 되어 가는데..."라고 질문을 하셨다. 거의 1년 전까지도 내가 영어 공부를 계속하는 이유와 목표가 명확했었다. 그리고 뭔가를 해 보려고 약간의 시도를 했다. 그러나 Covid-19 출현이라는 전대미문의 사건으로 1년 동안 거의 강제적인 반 운둔 생활을 하면서 생각이 많아지고 마음이 변한 것 같다. 젊은 시절에는 무엇을 하든지 간에 뚜렷한 이유와 목적을 갖고 한다. 그리고 그것은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세상일 다하고 은퇴한 나이에도 그렇게 하면 추해 지거나, 심하면 천박해질 가능성이 커지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계속하던 일이잖아요? 선생이라는 직업이 끊임없이 배워야 하는 직업이고요. 그리고 이(Covid-19) 상황에서 특히 할 일도 없잖아요? 하던 일이었고 그리고 영어 공부도 안 하면 특별히 할 일이 없어서, 그래서 하는 것이에요." 뚜렷한 목표를 설정하고 뭔가를 새로 시작하는 것은 아무 일도 안 하고 세월 보내는 것보다 몇백 배 이상 바람직한 일이다. 하지만 그것이 과하면 항상 부작용이 수반될 가능성이 크다. 그래서 2021년 새해에는 어떤 일을 새로이 시도하기보다는 나 자신을 추스르고 가꾸는 일, 즉 열심히 계속 배우면 좋겠다. 일상생활에서 매일매일 생기는 일들을 하면서 가족을 비롯하여 주변 사람들을 힘들지 않게 하고 싶다. 세상 상황이 좋아지면 사람들에게 조금이라도 친절하게 하고 Covid-19 이전에 하던 봉사활동을 계속할 수 있으면 좋겠다.
세월이 지나면서 조금이라도 덜 추하게 늙어가면 더욱더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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