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이야기(My Stories)

주말 아침

etLee 2008. 11. 22. 08:16

어제는 조금 분주한 하루였다.

하루 종일 기말 고사 시험을 출제하느라고 정신이 없었고, 매일 새로운 아이디어를 생각해내서 장난을 치는 우리반 녀석들이 막판에 조그만 사고를 내고 말았다.

 

요즈음 아이들은 집에서 사교육에 시달리느라 늦게 잠들어 그런지 학교에서 틈만나면 엎드려 잠을 잔다. 초겨울 추위에 아이들이 잠자기가 쉽지 않은 날씨이지만 교복 마의를 머리까지 뒤집어 쓰고 결국 잠을 잔다. 그 모습에 우리반 녀석들이 새로운 장난거리를 개발해 낸 것이다.

 

우리 녀석들의 2학기 주제는 마녀 사냥이다. 누군가 마녀로 지목되면 주변의 모든 녀석들이 그 누군가를 대상으로 뭔가 놀림거리를 만들어 집중적으로 놀려 댄다. 하지만 누구든지 희생자가 될 수도 있고 가해자가 될 가능성이 있다. 따라서 어느 누가 일방적인 가해자도 아니고 피해자도 아니어서 특별히 혼을 내거나 상담을 통해 위로하거나 할 수 있는 성질은 아니었다. 간혹 이녀석들이 담임 교사인 나까지도 마녀사냥의 대상으로 삼기도 한다. 요 며칠 전까지 유행했던 바지 벗기기 장난, 서로 등 때리기 장난, 그리고 누군가를 대상으로한 각종 언어적 유희들이 마녀사냥식 장난의 예들이다.

 

드디어 어제 사고를 쳤다. 헌진이라는 녀석이 교복을 뒤집어 쓰고 자고 있을때 누군가 손바닥으로 등때리기 장난이 시작되었고 잠자던 녀석이 반사적으로 욕을 해서 시작된 싸움에 입안에 꽤 깊은 상처가 났다. 싸운 녀석들의 말대로 라면 싸움이 시작되어 맨 처음 휘두른 주먹에 이미 헐어 고생하고 있던 헌진이 입안이 꽤 깊게 찢어지고 말았던 것이다. 그리고 그녀석 담임에게 찾아와 하는 말! "조퇴 시켜주세요" 셔츠와 조끼에 핏방울이 튀겨있고 입술은 퉁퉁 부은 상태에 양손에 피로 물든 휴지를 들고 와서 담임에게 한다는 말이 기껏 조퇴를 해달란다. 이녀석이 담임을 완전히 물로 봤나?

 

결국 헌진이 어머님이 학교에 오셨고, 그 이전에 사건의 전말을 다 파악한 상태에서 놀란 어머니를 진정시키고 병원에 보냈다. 주말에 8교시 보충 수업중에 터진 일이라서 사건의 마무리는 월요일에 처리하기로 하고 같이 싸운 녀석들 포함해저 약간의 잔소리를 겸한 종례를 하고 아이들을 귀가 시켰다.

 

저녁 6시부터 시작하는 특별 보충 수업중에 헌진이 녀석의 문자가 왔다. 입안을 몇바늘 꽤맸고, 의사의 말에 따르면 며칠 지나면 상처가 아물고 별일 아니란다-담임교사의 오랜 경험으로 이미 그렇게 판단 하고 있었지만 그래도 문자를 보고 나서야 마음이 편해졌다. 눈매가 약간 옆으로 올라가서 다소 날카롭게 보이는 얼굴 표정과는 다르게 헌진이 녀석 엄살이 얼마나 심한지 의사가 마취를 잘못해서 엄청 아프고 죽겠다고 한다. 그래서 난 그녀석의 문자을 씹었다(요즈음 아이들의 표현을 잠시 그대고 써본다)

 

담임을 하다 보면 어쩌다 일어나는 사건 사고지만 그 해결의 책임을 담임 교사가 온전히 다 짊어지게 된다. 그런 사고가 터졌다고 해서 교사로서의 다른 책임이 지불 유예되듯이 잠시 중지 되는 것도 아니고 덜어지지도 않는다. 아니 그러 일들은 매일 매일 쏟아지는 담임 교사의 업무에 부가적으로 더해지는 부록과 같은 것이다. 수업은 수업으로 그대로 남아 있어 누군가에게 부탁 할 수도 없는 것이고, 그런 사고가 일어나면 불안해하고 뭔가 긴장되어 있는 학급 아이들을 진정시켜서 계속 공부할 수 있게 해야 하는 것도 담임의 몫이다.

 

그렇게 하루를 마감했다.

얼른 이 글 마치고 아침 먹고 산으로 출발해야 겠다.

한 인간으로서 나 역시 지난 시간을 되돌이켜 보고 반성하고,

스스로를 격려하면서 가끔 기도를 할 시간이 필요하다.

 

그 시간이 나에게는 산속을 홀로 걸으며 보내는 주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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