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천주교 주보 3면의 글의 제목이 '주고 잊어라'였다. 그 글의 필자가 독일에 갔을 때 그곳에 있는 <성 마틴 호스피스> 병원에서의 경험을 담은 이야기였다. 죽음을 가장 평화롭게 받아들인 사람들이 어떤 어떤 삶을 살았던 사람들인가 하는 질문에 대해서, 남을 위해 봉사한 사람들이 가장 고통스러운 죽음과 맞닥뜨린다는 답을 들었다고 한다. 그러면서 필자는 주고 또 주고 그리고 그 준 사실을 잊어야 한다고 그 글에서 말하고 있다.
이 짧은 글을 미사 말미에 읽으면서 한 가지 문득 PetePan의 머리에 스쳐가는 것이 있었다. 다른 사람에게 나누어 줄 만한 것이 PeterPen에게 있기나 한 것인가? 본디 세상에 태어날 때부터 온전히 받기만 한 것이 우리 인간의 삶인데 남에게 떼 줄만한 것이 뭐가 있을까? 혹시 줄 것이 있다면 그것이 정년 자기 자신만의 것이겠는가? 남을 위해 봉사한 사람들이 고통스러운 죽음에 직면하는 이유가 아마도 준 만큼 받으려고 하는 마음 때문인 것 같다고 하는데, 이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이 "주고 잊어라"라는 명제가 될 수 있을까?
"Give"라는 명제는 남에게 줄만한 것이 있다는 전제를 깔고 있다. 그리고 또한 인간의 본성은 남에게 뭔가를 주면 의식적, 무의식적으로 그 대가를 기대하는 것이 보통이다. 남에게 뭔가를 줬는데 아무런 대가도 없고, 심지어 감사의 표현 조차 없다면 본능적으로 손해 본 느낌이 들고 더 나아가 배신감 같은 것을 느낄 수 있다. 그래서 종교는 우리들에게 '끊임없이 주고 또 주어라... 그리고 잊어라!'라고 요구한다. 하지만 평범한 사람들에게는 이것 역시 실천하기가 쉽지 않은 일이다. 남에게 뭔가를 준 사실을 잊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남에게 베풀고 도와주고 싶은 마음 또한 우리 인간 본성의 한 부분인데, 그것에 대한 대가를 바라는 아주 인간적인 마음을 극복하는 방법을 찾는 것이 문제가 된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는 "왼손이 하는 일을 오른손이 모르게 하라"라고 까지 말했으며, 불교에서는 끊임없이 "행 보리심"을 강조하고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종교에서 요구하는 방식들을 실행에 옮긴다는 것이 그렇게 말처럼 쉽지 않다는 것은 모든 사람들이 다 알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찌하라는 말인가?
지금 상암동 월드컵 경기장에서는 세네갈 축구대표팀과 우리나라 대표팀이 친선경기를 하고 있고 TV를 통해 중계되고 있다. PeterPan앞에는 9명의 학생들이 자신들의 미래를 위해 공부하고 있다. 불과 30분 전만 해도 이보다 더 많은 학생들이 수학능력 시험을 준비하고 있었다. 그런데 중간 휴식시간에 그 축구 경기의 유혹을 견디지 못하고 상당수의 아이들이 귀가했다.(고3 녀석들이...) 하지만 PeterPan은 여전히 이들과 함께 교실에 있다. 아이들과 약속을 실행하기 위해서 이다. 하지만 마음 한편에서는 화가 난다. PeterPan도 집에 가서 편하게 축구 중계를 보고 싶은데, 녀석들은 대부분 집에 가고 남아 공부 계속하는 녀석이 얼마 없다. "난 도대체 누구를 위해 이 고생을 하는 것인가?"
금년 한 해는 PeterPan의 내면에서 끝없이 이런 질문과 싸우며 보낸 시간이라 하겠다. 고3 담임교사가 된 순간부터 아이들이 자신의 목표를 이루기 위한 노력에 조금이라도 힘을 더해 주겠다고 계획한 순간부터 시작된 일이다. 이렇게 매일 밤늦게까지 학교에 남아 있어야 하는 시간이 채 한 달이 남지 않았지만, 아이들의 이러한 모습을 보면 실망감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주고 주고 또 줘라... 그리고 잊어라"라고 수없이 마음속에서 외쳐 보지만 늘 마음 한구석에는 뭔가 찌꺼기가 남는다.
<갚고 갚고... 그리고 갚아라! 생명이 멈출 때까지...>
PeterPan이 미사를 마치고 성당 계단을 내려오며 깨달은 명제다. 우리 인간은 태어나는 순간부터 누군가로부터 빚지며 살아간다. 우리의 생명은 부모로부터 받은 것이며, 우리가 숨 쉬는 공기는 다른 녹색 생명체들이 만든 것이고, 우리가 먹는 것 역시 그들 생명 자체라는 사실이다. 즉 우리가 살아 숨 쉬는 어느 한순간도 뭔가 다른 존재들로부터 독립되어 존재할 수 없으니 우리의 삶 자체가 채무라고 표현할 수 있겠다. 다른 사람, 다른 생명을 위해 뭔가 도움이 되는 일을 하는 것은, 받은 그대로 갚는 것이니 되돌려 받을 것이 있을 수 없으며, 더군다나 "Give" 는 더욱 더 아니다. 그러니 다른 사람들이 보답하지 않는다고 서운해 할 것도 없다.
PeterPan이 음성 꽃동네 회원이 된 해가 1991년이니까 19년이 넘었다. 지금 앞에서 공부하고 있는 녀석들이 그해에 태어났다. 꽃동네에서의 1박 2일의 봉사 체험도 3년전에 다녀왔다. 이틀동안 봉사체험의 경험을 통해 꽃동네 후원회원이 되었음을 감사히여기는 마음을 얻게 되었다. 하지만 이런 것들이 결코 "Give"하고 "Forget"하는 마음은 아니다. 그냥 "받은 것의 갚음"의 마음이라는 생각이다. 이제 교실이 텅 비어있어도 서움함이 없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냥 갚는 것이며, 아직도 교실에는 6명의 아이들이 남아 있다. 갚음에는 크고 작음도 존재할 수 없다. 그냥 갚을 수 있을 만큼 갚으면 된다.
<갚고 갚고...그리고 갚아라! 생명이 멈출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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