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이야기(My Stories)

수능 시험장 준비

etLee 2010. 11. 16. 21:38

   수능 시험이 이틀 앞으로 다가왔다. 우리 학교 역시 예외 없이 수능 고사장으로 지정되어, 그 준비에 또 북새통을 치루고있다. 지난주 월요일 부터 우리반 학생들에게 개인 사물함을 비우기 위해, 조금씩 책을 집으로 나누어서 가져가라고 아침 조회시간과 종례시간에 거의 매일 이야기 했다. 그런데 수능 이틀전인 오늘까지도 대부분의 아이들의 사물함이 굳게 잠겨 있어서 한바탕 난리를 치루었다. 20년이 넘도록 교사 생활을 했지만 아이들을 가르치고 지도하는 것이 이처럼 힘겹게 느껴지기는 전에 없었던것 같다. 

 

   도대체가 아이들과 의사 소통이 안된다. 매일 매일 거의 같은 말을 반복해도 교사의 말을 실행에 옮기는 아이들이 너무 너무 적다. 사소한 예로, 교실 바닦에 휴지가 떨어져 있어서 가장 가까이 앉아 있는 학생에게 "아무개야, 거기 휴지좀 치워라." 해도 아이는 그 말에 반응하지 않는다. 그리고 이런 일은 극히 일상적이 일이 되어, 2000년대 이후로는 교실 안밖에서 빗자루와 스레받이, 그리고 걸레자루를 드는 일이 흔해 졌다.

 

   오늘도 아이들이 일상적인 교실 청소를 하고 귀가한 텅 빈 교실에서 홀로 청소를 했다. 개인 사물함은 물론이고 책상속도 비우라고 했는데 여전히 몇몇 아이들의 책상속에는 책과 공책들이 남아 있었고 어떤 것에는 쓰레기들이 차 있었다. 아침부터 매시간 마다, 한 학생이 자진해서 교실 바닦 껌을 제거하였지만 아직도 교실 구석 구석에는 껌자욱이 남아있었다. 청소도구함 밑을 쓸어내고 있는데, 안에 무엇인가 있는것같았다. JS 녀석이 나름대로 머리를 썼는지, 여분의 쓰레기 봉투에 자기의 책을 넣어서 몰래 청소도구함 밑에 숨겨 놓은 것이다. 일부 책상에는 한 2주전부터 지우라고 했던 낙서가 남아있었다. PeterPen은 이 모든 것들을 쓸고, 지우고, 떼어내고, 치우고, 교실 바닦을 물걸레로 청소했다. 그렇게 2시간이라는 적지않은 시간을 보냈다..

 

   우리반 녀석이 저녁 보충 수업을 마치고 교실에 들려서 한마디 했다. "교실 깨끗해 졌는데요?" 이 녀석 마음속에 뭔 생각이 들었는지 20여분 후에 빵을 하나 사들고 와서 "드세요"했다. 혹자는 왜, 선생님이 교실 청소를 하느냐고 말하기도 할 것이고, 또 어떤 이들은 선생님이 청소좀 하면 안되냐고 말할지도 모르겠다. 세상 사람들 뭐라 말해도 상관 없다. 우리나라 교육 현실과, 최근의 급변하는 아이들의 모습속에서, 어느정도 교실 환경을 깨끗이 유지하고, 수능처럼 국가적인 행사에 손님들을 맞이해서, 그 손님들이 조금이라도 깨끗한 교실에서 시험을 볼 수 있게하려면 아이들이 다 귀가한 후에 조용히 남아 교실을 청소하는 것이 교사로서의 하나의 선택이 될 수 밖에 없다.

 

   교사의 관점에서 어느정도 깨끗하게 아이들 스스로가 교실청소 하기를 기대하며 아이들과 씨름하는 것보다, 텅 빈 교실에서 홀로 편한 마음으로 여유를 갖고 청소하며 생각에 잠기고,  때로는 삶을 되돌아 보는 것이 더 마음 편하고, 이따금 입게되는 마음의 상처도 없다. 나이가 들어서 그런지, 최근에는 PeterPan이 아이들로 부터 상처를 받을때가 많아졌다. 물론 여전히 나도 모르게 아이들에게 상처를 주고, 힘들게 하는 일이 있겠지만, 거의 매일을 거리의 가로등 불빛을 친구삼아 귀가할 때에는 그냥 슬프다는 느낌이 들때가 종종 있다. 

 

   방학만 되면 우리집 내자가 힘들어 한다. 중학교와 초등학교를 다니는 아이들과 함께 보내야하는 시간이 많아져서 그런다.  이런 모습들이 청소년 자녀들 한두명 있는 가정의 모든 엄마들이 매년 여름방학과 겨울방학 두차례 치루어야하는 행사인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교사라는 직업을 가진 사람들은, 보통의 엄마들이 한두명에도 힘들어하는 아이들 수십명, 혹은 수백명과 매일 매일 씨름을 하며 생활해야 한다. 교실과 복도에서 소리지르고 뛰어 다니며, 수없도 거의 듣지 않고 떠들거나, 잠자는 아이들과의 하루 일상이 끝나면, 그야 말고 몸과 마음이 지쳐버린다. 게다가 학생들과의 관계에서 이따금 험한 일을 당하기라도 하면...

 

   오늘은 그냥 손님 맞이하는 마음으로 청소했다. 이 교실에서 시험을 치루게 되는 그 누군가에게 행운이 있기를 기원하며 편한 마음으로 그렇게 했다. 우리 아이들도 자신들이 노력한 만큼, 최선을 다해 시험을 치루고 좋은 결과 얻기를 함께 바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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