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깨가 너무 아파서 잠을 잘 때에도 불편했다. 나이가 들어 늙어가면서 흔하게 발생하는 어깨 통증을 금년 봄까지는 꾸준히 운동하며 잘 관리하고 있었다. 그런데 지난겨울에 세상의 빛을 보게 된 첫 손주를 돌보게 되면서 어쩔 수 없이 어깨에 문제가 생겼다. 1-2주 전까지는 오른팔을 들어 올릴 수 없을 정도로 고통스럽고 아팠다. 지속적인 신체적 고통이 사람의 정신을 피폐하게 하고, 삶의 질을 나락으로 떨어뜨릴 수 있다는 것을 깨닫고 실망하기까지 했다. 어느 날 늦은 밤에, 멈추지도 않고, 완화되지도 않는 통증에 잠 못 이루고 이리저리 뒤척이고 있었다. 그런데 한순간 "이 아픔을 피할 수 없다면 그냥 받아들이고 친구처럼 안고 살아야지!"라는 생각이 번개처럼 스쳐갔다.
나이가 들었어도 생명은 환경이 변하면, 그 변화에 적응해 가는 것 같다. 몸이 늙어 생체 활력이 떨어져도 말이다. 그 밤 이후로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씩 통증이 완화되더니 이제는 팔을 올릴 수 있고 어깨를 돌리며 스트레칭이 가능해졌다. 추석 연휴에 친정집을 찾아온 딸이 쉬겠다며 아직 우리 집에 머물고 있다. 그리고 어제 딸네 집 근처 병원에서 Covid-19 집단 감염이 발생했다는 뉴스를 보고 1주일 더 있겠다고 선포했다. 딸 녀석이 한주일 더 머문다는 것은 그만큼 내 어깨가 더욱더 열심히 일해야 한다는 뜻이다. 이제 막 무엇인가를 잡고 일어서서 발걸음을 떼는 어린 손녀가 손을 내밀며 안아 달라고 하면 편치 않은 내 어깨가 초능력을 발휘한다.
나는 가끔 집사람에게 이런 농담을 한다.
"손주는 아주 독한 마약보다 더 중독성이 있는것 같아. 그냥 혼자 앉아 있으면 허리도 아프고 어깨, 팔이 이렇게 아프다가도, 이 녀석을 덥석 안으면 그 고통이 다 사라지는 것을 보면..."
집사람은 아무 댓구 없이 얼굴에 미소를 지으며 다가와 덥석 손주를 안아 데려간다. 나는 직감적으로 집사람도 내 말에 전적으로 동의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하루 종일 밖에서 일하고, 퇴근길 교통 체증에 시달려서 피로에 지쳐 있는 것이 분명하지만 손녀를 보는 순간 그 모든 것을 잊고 활짝 웃으며 안아주는 집사람을 보면서, 나보다 더하면 더했지 결코 덜하지 않다는 것을 깨닫는다. 내년 봄에는 우리 집 식구가 한 사람 더 늘어나게 된다. 그러면 지금 보다 더욱더 힘들어 질지도 모르겠다. 요즈음 세상에 두려움이나 걱정 없이 덥석 덥석 자식 낳아 키우겠다고 생각하는 젊은이가 얼마나 있는지 잘 모르겠다. 우리 딸과 사위가 바로 그런 젊은이였고, 우리 부부도 딸 부부처럼 똑같이 용감한 할머니 할아버지가 되어 간다.
애 하나 낳아 키우는 것이 이렇게 돈이 많이 들어가고 신체적, 정신적으로 이처럼 힘든 일이었는지, 내 새끼들 낳아서 키울 때에도 전혀 깨닫지 못했다. 요즈음에는 아기 키우는데 필요한 물건들이 예전보다 엄청 많아졌고 그 종류도 다양했다. 게다가 그 물건들의 가격이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로 고가인 경우가 많았다. 더욱더 문제스럽게 생각 되는 점은 그 많은 종류의 유아 용품들이 대개는 1회용, 또는 동성의 아이를 연이어 낳은 경우에만 이어서 사용되고 버려지는 것이라는 사실이다. 지난 10개월 동안 손녀딸을 돌봐 주면서 관찰한 딸아이의 살림살이를 보면, 놀라울 정도의 비율로 많은 비용이 손녀딸 키우는데 쓰인다는 것이다.
딸아이의 살림 살이를 보면서 아무리 넉넉한 마음으로 생각해봐도 요즈음 젊은이들이 처한 상황이 너무 힘들 것 같다는 생각을 떨쳐 버릴 수 없었다. 내가 이 시대의 젊은이로 태어났다고 해도, 집 장만하고 혼인해서 아기 낳아 키우겠다는 생각을 하려면 엄청난 용기가 필요했을 것이다. 아니, 그 생각 조차 못하고 포기했을 것이다. 집사람이 가끔 생활비 이야기를 한다. 우리 부부의 한 달 생활비의 상당 부분이 출가한 딸아이를 위해서 쓰인다. 얼마 전 딸의 이름으로 채권추심 통지서가 왔다. 분유, 기저귀 등, 대부분 유아용품 구매를 위한 소액결제 비용이 체납된 것이었다. 할아버지는 어린 손주에 대해 무한 책임을 질 수밖에 없다. 그래서 그 비용의 상당 부분을 감당했다.
딸을 통해 사위의 한달 수입이 어느 정도 인지 대략 알고 있다. 그 수입으로는 아기 하나 키우며 평범한 생활을 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그래서 딸아이는 요즈음 흔히 말하는 시부모, 친정부모 찬스를 최대한 활용한다. 그게 없었다면 우리 딸아이의 현재 수준의 생활을 유지하는 것이 힘들다는 것을 우리 양가 부모들이 잘 인지하고 있다. 아침에 집사람이 출근하면서 조용히 딸아이를 밖으로 불러서 뭔가 비밀스럽게 속삭였다. 나는 그 내용이 무엇인지 직감했다. 아기 분유 사라고 돈을 보탰을 것이다. 어젯밤 설거지하는 동안에 두 모녀가 손녀딸 분유에 대해 대화하는 것을 우연히 들었었다. 그렇게 사는 것이다.
원주시 하늘 아래 조그만 한 아파트에서, 지금 이순간에도 1년 전에 군 복무를 마치고 대학에 복학한 아들이 열심히 공부하고 있을 것이다. 우리 아들 녀석은 군 입대 신체검사에서 간 치수가 높아 재검이 나왔다. 우리 부부는 아들의 성장을 위해서 군복부를 하고 오는 것이 낫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병원에 가서 검사를 받고, 그에 상응하는 치료를 끝내고, 추위가 한창인 1월에 군에 보냈다. 박격포병으로 자대에 배치를 받고 한창 졸병으로 근무하던 2018년 5월 초였다. 지역사회의 단오절 행사에 차출되어 행사를 마치고 귀대한 일요일 밤 10시쯤에 중대장에게서 전화가 왔다. 아들이 군부대 주변 읍내 병원에서 진료를 받은 결과 맹장으로 판명되어, 다음날 12시쯤 수술 예정이라고 했다. 잠시 아들과 직접 전화 통화를 하고 나서, 부모의 직감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큰 병원에 바로 보내야겠다고 생각했다. 중대장은 원주 세브란스 병원으로 갈 수 있을 것 같다고 해서 그렇게 해달라고 부탁했다.
결국 아들은 그밤 엄청 이른 새벽녘에 복막염으로 긴급 수술을 받았다. 담당 의사 선생님 말로는 맹장이 파열되고 복막염이 상당히 진행되어 수술이 오래 걸렸고, 그래서 환자 본인도 고통이 꽤 심했을 것이라고 했다. 거의 2주 동안 입원했는데 이물질이 완전히 제거되지 않아 퇴원하는 날에도 염증 치수가 꽤 높은 편이었다. 무엇보다도 걱정스러웠던 것은 수술 부위의 상처가 완전히 아물지 않은 상태였다. 주치의는 아들의 상처가 완전히 나을 때까지는 적어도 이틀에 한 번은 군내 의료반에 가서 반드시 드레싱 처치를 받아야 하며, 이후 1주일 정도는 쉬라고 권고했다. 그날 오후 5시 조금 못될 즈음에 아들을 군부대 앞까지 차에 태워가서 영내로 들여보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내내 마음이 편치 못했고 집에 돌아와서도 쉽게 잠들지 못했다.
며칠 뒤 수술 받은 병원에 통원 치료를 받기 위해 외출을 나온 아들에게서 어처구니없는 소식을 들었다. 맹장 수술을 마치고 어느 정도 회복은 되었지만, 퇴원 이후에도 적지 않은 시간 동안 치료와 휴식이 필요하다는 주치의의 소견서까지 부대에 제출한 아이에게 바로 그다음 날 일요일에 초병 근무를 서게 했다는 것이다. 1980년대 초, 전두환 철권 시대에 군생활을 할 때에도 아픈 병사에게는 그렇게 모질게 하지 않았던 것으로 기억하고 있다. 그런데 우리 아들은 2018년 군 복무 중에 이런 일을 겪었다. 그래도 무사히 군 복무를 마치고 건강하게 전역해서 지금은 자신의 인생 목표를 설정하고 열심히 공부하고 있어서 대견스럽다.
최근 정부의 어느 부처 장관의 아들 군복무기간 중 휴가와 관련된 뉴스를 보고 들으면서 우리 아들에게 미안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보다 바로 1년 전에 전화 한 통화로 병가를 연장했던 사례가 우리 군에 있었음에도 아빠가 못나서 그런 생각 조차 못했으니 말이다. 아니 그런 생각을 했다고 해도 변한 것은 전혀 없었을 것이다. 아들이 병에서 완전히 회복되지는 않았지만, 군인이니까 병원에서 퇴원하고 부대에 복귀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고 아직도 그 생각이 틀리지 않다고 믿고 있다. 다행스러운 점은 그런 아빠의 생각을 아들이 전적으로 지지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아들에게 미안하고 감사하다.
그런데 세상이 정말 답답하고 걱정 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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