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토요일은 바람이, 그것도 찬 북서풍이 많이 불었다. 평소보다 이른 아침에 북한산 산행길을 나섰다. 일상적으로 북한산 산행을 할때에는 문수봉을 돌아 청수동암문을 통해서 대남문으로 가는 길을 선택한다. 그런데 오늘은 마음이 무슨 변덕을 부렸는지 문수봉 바로 밑에서 문수봉으로 바로 올라가는 길로 방향을 잡았다. 문수봉 정상 가까이에 이르자 차가운 북서풍 바람이 거칠게 불어서 등산용 모자가 벗겨져 날아갈 뻔했다. 종아리까지 내려가는 바지와 가을 티 하나 달랑 입고 북한산 문수봉까지 올라간 것은 잘못된 판단이었다. 세찬 바람에 체온을 빼앗겨 꽤나 춥게 느껴졌다. 그래서 가을 단풍에 붉게 물든 아름다운 경치를 제대로 감상하지 못하고 바로 대남문을 지나 북한산성 길을 따라 내려왔다.
등산을 마치고 집에와 쉬고 있는데 병원에서 검사를 마치고 돌아온 집사람이 "내일 당일치기로 설악산을 가자"고 졸랐다. 며칠 전 퇴근 후 농담하듯 툭 던진 말이었다. 토요일 아침까지만 해도 북한산성 입구에서 이른 산책을 하고 딸네 집에 가서 손녀 보고 오자고 했었다. 장 내시경 검사를 받고 아무런 이상이 없다는 의사 소견에 기분이 좋아져서 그런 생각을 한것 같았다. 결국 집사람의 제안에 따르기로 하고, 일요일 이른 새벽에 집을 나서 아침 8시 조금 넘어 설악동에 도착했다. 우리는 매표소 근처 공영 주차장 바로 아래에 있는 사설 주차장에 차를 주차하고, 차 안에서 간편하게 준비한 도시락으로 아침을 해결했다.
설악동 입장 매표소까지 이어지는 2차선 도로에는 승용차들로 가득해서 마치 주차장 같았다. 아래쪽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산책한다는 마음으로 걸어 올라가기로 한 것이 정말 잘한 선택이었다. 신흥사를 지나 울산바위까지 가는 등산로가 지난여름 장마에 거의 완전히 소실되어서 임시로 만들어진 길을 따라서 흔들바위까지 올라갔다. 흔들바위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으려면 줄을 서서 차례를 기다려야 했다. 집사람이 바위 앞에서 사진을 찍고 싶다고 해서 적잖은 시간을 기다렸다. 우리가 가는 동안에는 사람들이 그렇게 많지 않았지만, 내려오는 동안에는 올라오는 사람들의 행렬이 멈추지 않았다. 신흥사 광장 커다란 불상 주변에는 정말 많은 사람들이 기념사진을 찍고 있었다. 시원하고 맑은 가을바람이 불어 상쾌한 날씨였지만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산행길 내내 마스크를 착용했다.
불과 왕복 3시간 정도의 산행길에 적지 않은 외국인들과 자주 마주쳤다. Covid-19가 전 세계적으로 대 유행 중이라는 것을 고려하면 다소 의외였다. 특히 중국인들이 많다고 느껴졌고, 심지어는 가족 단위 단체 관광처럼 보이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들을 지나치는 동안, 갑자기 최근 중국 공산당 정부의 6.25 참전 기념식 관련 뉴스가 떠오르면서, 나도 모르게 "항미원조? 염병하고 있네!"라고 중얼거리도 했다. 아무튼 우리 부부는 설악동을 떠나서, 잠시 속초 중앙시장에 가서 그 유명한 닭강정과 씨앗호떡, 김과 황태채를 구매했다. 동명항 방파제 뚝 산책은 이번 여행의 마지막 일정이었다. 이날의 여행은 엉뚱한 '항미원조' 관련 뉴스 기억이 떠올라서 잠시 기분이 상한 것을 제외하면 완벽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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