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이야기(My Stories)

Dahee가 누구세요?

etLee 2009. 1. 5. 16:17

 

사람들은 나의 메일 주소를 알려주면 늘 이렇게 질문한다. <다희가 누구세요?> 하지만 난 그 질문에 대답을 할 수 없다. 나의 머뭇거림에 사람들의 시선은 그 이름에 뭔가 숨겨진 비밀 혹은 과거의 옛 추억쯤으로 생각하고, 심하면 야릇한 미소를 보내기도 한다. 그렇게 그렇게 머뭇거리다가, 포기하지 않고 계속해서 자꾸 캐 물으면 <죽은 내딸이야>하고 대답한다. 그러면 반응이 너무 다양하다. 놀라는 사람도 있고, 정말이냐고 묻는 사람도 있고, 왜 죽었느냐고 묻는 사람도 있고... 하지만 더 이상의 질문에는 답하는 일이 거의 없다.

 

그 녀석은 지 엄아 뱃속에서 부터 뭔가 잘못되어 태어난 녀석이다. <선천성 회장폐쇠>, 내 기억으로는 그 녀석이 갖고 태어난 공식 병명이다. 그 녀석 살리겠다고 태어난지 일주일도 채 지나지 않아 수술대에 올렸고, 그 얼마 지나지 않아 또 다시 수술 동의서에 서명을 했지만 그것 역시 실패였다.

 

주위 사람들은 말렸다. 그 녀석 출생 신고 하지 말라고. 하지만 난 그 녀석의 이름을 손수 지어 내 호적에 올렸다. 평소 좋아하는 글자인 <다>자에다, 내 자식대의 돌림인 <희>자를 넣어, 한자의 획수를 맞춰가며 정말 좋다는 이름을 만들어 출생신고를 했다. 죽을 운명이라는 것을 뻔히 알면서 그렇게 했다. 세상에 태어났는데 이름 석자라도 남겨주고 싶었고, 내가 죽는 날까지 그녀석 잊지 않으려고 그렇게 했다.

 

더위가 한창일때인 8월 중순경, 예정일 보다 한달 일찍 태어난 녀석은 채 9월을 넘기지 못하고 나와 내자가 기켜보는 가운데 새벽 마지막 숨을 끝으로 정말 순간 같은 생을 마쳤다. 이녀석 산에 가서 땅에 묻고 와서 홀로 울었다. 얼마나 울었는지는 기억 할 수 없다. 사망 신고 하던 날도 울었다. 하지만 어느땐가 더이상 울지 않겠다고 생각했다. 살아가는 동안 이 아비가 나약하게 울면 그 녀석 저 세상에서 더 슬프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도 그 녀석 생각이 나면 이따금 눈물이 나려고 할 때가 있다. 하지만 그냥 참는다. 지금 이순간 역시 무척이나 눈물을 보이지 않으려고 애쓰며 이 글을 쓴다. 사람들이 말한다. 부모가 돌아가시면 땅에 묻지만 자식이 죽으면 가슴에 묻는다고. 1992년 가을에 그랬으니까 세월이 꽤 흘렀다. 하지만 아직도 나는 이 말의 진정한 의미를 가슴으로 절절이 느낀다.

 

이제 나에게 남아있는 삶이라는 것이, 살아온 세월보다 적다는 사실을 문득, 문득 깨달을 때 마다, <다희>를 만나게 될 날이 이제 멀지 않았다는 생각을 한다 - 그리고 그런 생각 조차 담담하게 받아들인다. 지금 내 곁에 함께 살며 자신들의 삶을 준비하는 자식 녀석들의 소중함이 죽은 녀석의 존재로 더욱 더 절실해진다. 또한 살아있는 그 녀석들에 대한 아비로서의 책임을 다하려고 하는 노력과 의지가 더욱 더 강해지는 만큼 죽은 녀석에 대한 애련한 마음이 더욱 더 새로와 짐을 느낀다.

 

요즈음 큰 녀석이 언니의 실체를 알고 가끔 물어 본다.

 

아빠, 나한테 언니 있었어?

응.

근데, 왜 죽었어.

하느님이 일찍 데려가셨어... 

 

눈치가 빠른 녀석이라 더 이상 질문 하지 않고 이쯤 해서 끝을 내준다. 세월이 지나 이 녀석들이 철이 들어 저희들 호적을 열람해보거나, 아니면 나의 이야기를 통해 <다희>에 대해서 알게 될 것이다. 그러면 내가 죽은 녀석을 만나게 될 날이 더 가까워 졌다는 뜻일 것이고-<다희>녀석 내가 이세상에 있는 동안은 나와 함게 호적에서 삭제되지 않고 남아 그의 존재를 밝힐 것이고- 살아있는 자식들에 대한 아비로서의 책임을 다해 간다는 사실에 홀가분해 질 것이다. 원래 삶이라는 것이 그런 것이니까.  

 

사람들이 <다희>가 누구냐고 질문 할 때마다, 나는 아직도 당황스럽다. 어쩌면 죽는 날 까지 편하게 답 할 수 없을 것이다. 그래도 나는 그 이름을 버릴수없다. 가슴속 깊은 곳에 고이 묻어둔 이름인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