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모삼천지교>라는 말이 있다. 맹자 어머니가 맹자를 가르치기 위하여 세 번 집을 옮긴 고사에서 나오 말로서 자식을 가르치기 위하여 좋은 교육 환경과 최고의 교육 수단을 제공하려고 노력하는 부모의 마음을 나타낼때 쓰는 말이다. 실로 <맹모삼천지교>를 가장 잘 실천하는 부모들이 가장 많은 나라가 우리나라일 것이라는 의견에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넓고 편한 집을 전세 주고 강남의 비좁은 아파트에 전세로 사는 불편함을 결코 마다하지 않는 것이 우리나라 부모들이다. 어떤 부모들은 자식의 교육을 위하여 부부가 이억만리 떨어져서 이별 아닌 생 이별을 감수하고, 더 심한 경우에는 가장의 소득의 거의 대부분을 해외 조기 유학하는 아이들의 교육비로 지출하기도 한다.-자신들의 노후는 생각할 여유도 없다. 어떤 엄마들은 하루 종일 아이들의 학교와 학원 강의 스케줄에 맞춰 운전 기사의 역할을 기쁘게 수행한다. 또한 그런 엄마들은 마치 007 영화에서 처럼, 대학 입시를 정점으로 한 각종 시험 정보와 유명 학원 및 강사들에 대한 정보를 수집 분석하여 아이들에게 제공하는 역할을 능숙하게 해낸다. 어떤 엄마들은 어떤 특정 대학의 입시관련 정보에 있어서는 학교 현장에서 수년동안 대학 입시 지도를 한 교사보다 더 많이 자세한 정보로 무장되어 있다. 한마디로 자식의 교육과 관련해서는 거의 완벽한 무기로 무장한 전사가 되어 있다.
<맹모삼천지교>정신으로 무장한 부모들의 고등학교 선택, 즉 자신의 아이들이 다니게 될 고등학교의 선택의 기준은 명확하고 확고하다. 그것은 서울대학교에 진학한 학생수가 된다. 그밖에 다른 대학에 진학한 학생의 수는 거의 안중에도 없다. 가령 어떤 고등학교에서 서울에 있는 대학에 진학한 학생 비율이 주변 다른 학교에 비해서 현저하게 높다고 해도, 서울대학에 합격한 학생이 전혀 없으면 그 학교는 이들 부모들에게는 기피 학교가 된다.
어떤 사람들은 이러한 현상이 극해 소수의 사람, 혹은 특수 계층에 속한 사람들 사이에서만 일어나는 현상이라고 말할 지도 모르겠다. 그건 교육 현장을 몰라서 하는 말일 것이다. 이러한 현상은 서울의 일부 특정 지역 소수 계층의 사람들만의 생각이 결코 아니다. 이미 오래전에 아주 평범한 사람들 마음속 깊이 뿌리 내린 생각들이고 일반적인 현상이 되었다. 사람들의 마음속에 서울대학에 합격한 학생이 없거나 극히 적은 경우에는 그 학교는 별볼일 없는 학교, 기피 해야 할 학교로 인식되고, 그 기피현상들이 이미 오래전부터 교육 현장에서는 피부로 느낄 정도가 되었다.
현 정부의 교육 정책이 지금의 방식으로 진행된다면, 고등학교 평준화 정책은 사실상 종료되었다고 보아야 한다. 중학교 학생들에게 자신이 진학하고자 하는 고등학교에 대한 선택권도 확대될 것이다. 게다가 기존에 존재하고 있는 특수 목적고등학교에다, 자립형 사립학교, 자율형 사립학교 등 여러가지 형태의 고등학교가 더 생겨 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이들 <맹모삼천지교>정신으로 무장한 부모들의 선택은 불보듯 뻔하다. 요즈음 언론에서 우려를 나타내고 있듯이 일반 인문계 고등학교는 나락으로 떨어질 가능성이 매우 커졌다. 이미 서울의 강북 지역에서는 그 비슷한 현상들이 나타 나고 있다. 특히 서울대학교에 진학하는 학생수가 극히 적은 학교에서는 더욱 더 피부로 느낄 수 있다.
다양한 형태로 특성화된 고등학교가 늘어나고 학생들의 학교 선택권이 주어짐에 따라서 일반계 고등학교들은 우수한 학생들을 유치하기 위해서 치열한 생존 경쟁을 벌여야 한다. 거기에다 중학교 학생들과 학부모들의 고등학교 선택의 기준이 서울대에 합격한 학생의 수가 되고 있다는 자명한 현실속에서 고등학교들은 생존 경쟁력을 향상시키기 위해서, 서울대 합격생 수를 늘리기 위한 온갓 수단과 방법을 다 동원하게 될 것이다. 상당수 일반계 고등학교에서는 이미 의무 자율학습, 보충수업을 통해, 심한 경우에는 비공식적인 수준별 분반이라는 형태로 그 경쟁에 대비해왔다. 단지 그것을 공식화 내지 표면화 하지 못한것 뿐이다.
이러한 상황속에서 교육현장에서 아이들과 직접 부디끼고 생활하는 교사로서는 <서울대 지상주의에 대한 유감>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일년에 대학을 가기 위해 수학능력 시험을 보는 학생들의 수가 대략 55만명 정도가 된다. 그 중에서 서울대학에 진학하는 학생수는 대략 3000명 가량이다. 즉 수능을 치루는 학생중의 1%도 안되는 학생들만이 서울대학을 진학하는 학생들이다. 이 55만명의 학생들의 3년전, 고등학교를 선택하는 기준이 그 고등학교의 서울대 합격생의 수가 되어야 한다는 것은 너무도 비합리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실은 그 비합리가 합리적인 것이 되어 버렸다.
한 교실에 앉아있는 아이들의 대부분은 서울 대학은 커녕 소위 SKY의 범주에 속하는 대학에도 갈 수 없다. 요즈음 고등학교 3학년 학생들 사이에서는 서울에 있는 대학이면 모두 다 <서울대학>이라고 이야기 하기도 한다. 그만큼 서울 시내에 소재한 대학에 합격하는 것도 어렵다는 현실을 반영한다. 실제로 고3 담임을 하면 4년제 대학에 합격하는 학생을 5명 이상 배출하기가 정말 어렵다는 것을 느낀다. 심하면 30여명의 학생들 중에 겨우 1명 정도만 진학에 성공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 이것이 강북에 있는 일반계 고등학교에서의 현실이다. 서울대는 고사하고 서울 소재대학에 진학하는 것도 이처럼 어려운데, 중학교 학생들의 고등학교 평가기준은 여전히 서울대학에 합격하는 학생의 수가 되고 있으니 기가 막힌 노릇이다.
학교 현장에 있는 교사가 현실을 무시 할 수는 없다. 학생들과 그 학부모들이 가능하면 좋은 대학, 좋은 학과에 합격하기를 원한다. 그들이 원하는 것을 이루기 위해 교사는 그 아이들을 이끌어 주고, 도와주는 일을 멈추지 말아야 한다. 하지만, 너무도 많은 어린 학생들이 대학 진학을 위해 엄청난 희생과 댓가를 치루며 오로지 공부만 하는 기계인간이 되어가고 있다. 그리고 그중에 상당수의 아이들이 그로 인해서 파생되는 헤아릴 수 없을 만큼의 고통과 어둠의 터널 속에서 방황하며 괴로와 한다. 이런 모습들을 바로 옆에서 지켜보면서, 이것이 진정 바람직한 현상인가 하고 의구심을 품지 않을 수 없다. 그래서 서울대학 지상주의가 유감이고, 마음이 아프다. 오늘도 답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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