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를 이제 막 졸업(2009.2.13)한 딸이 요즈음 밤 11시에 집으로 돌아 온다. 지난 1월 초부터 모 사설학원 특목고 반이라는 곳을 다니게 되었는데 거기에서 밤늦은 시간까지 공부를 하기 때문이란다. 그래서 나는 요즈음 본의 아니게 늦게 자야한다. 딸 녀석이 집에 들어오는 것을 보아야 하기 때문이다. 그 녀석 집에 돌아와 배가 고프니까 간단하게 간식을 해야 하고, 그것이 끝나면 씻고 잠자리에 들게 되는데, 그 모든 일이 끝나면 밤 11시 30분를 훌쩍 넘긴다. 그제서야 나도 편한 마음으로 잠들 수 있다.
학교 수업중에 학생들이 다른 책을 펴고 뭔가 열심히 하는 모습을 자주 보게된다. 상당수의 학생들은 수업을 받는 과목의 책 밑에 다른 것을 늘 함께 펼쳐놓는다. 그리고 잠시 선생님들이 다른 이야기를 하거나 혹은, 문제를 푸는 중에 다른 아이들 보다 빠르게 문제를 해결하면 바로 그 다른 책 혹은 인쇄물을 읽거나 푼다. 더욱더 심한 경우는 수업시간에 교사의 수업은 전혀 듣지 않고 다른 뭔가를 열심히 하는 학생들이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 학생들에게 다가가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 살펴보면 학교 과정에서는 가르치지 않는 내용의 것들을 하고 있고, 그 것은 바로 그 학생이 다니는 학원 및 개인 교습에서의 숙제라는 것이다.-그리고 그 숙제를 안해가면 심한 경우에는 체벌을 받는다고 한다.
최근에 이런 이야기를 들었다. 학원에서 아이들에게 새벽 2시에 휴대폰 문자로 숙제를 내주고 그것을 그날 학교 공부가 끝나고 학원에 갔을때 확인 한다는 황당한 이야기였다. 이런 학원을 다니는 학생이 집에 귀가하는 시간은 대략 11시일 것이고, 그러면 새벽 2시까지 그날 복습을 하면서 숙제를 기다리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 숙제가 메시지를 통해 도착하면 바로 숙제를 시작 해야할 것이다. 학교 수업을 정상적으로 받는다는 전제하에서 그 학생이 숙제할 시간은 새벽 2시부터 서너시까지가 전부일 테니까. 고등학교 학생들은 새벽 6시쯤 일어나 등교 준비한다. 등교후 학교에서 하루종일 정규 수업을 받고 보충수업까지 받게되는데 학교가 끝나면 바로 그 학원버스가 학교 앞에서 기다린다.
우리 딸 녀석이 소위 특목고 반이라는 것을 다니기 전에는 수업시간에 아이들이 딴 짓을 하는 것이 전혀 이해되지 않았다. 오늘 봄방학 보충수업중에 우리반 녀석 하나가 전혀 내 수업을 듣지 않는 것이었다. 그래서 가보니 다른 영어책을 열심히 보며 풀고 있었다. 그녀석 평소 내 수업시간에 딴짓 하는 녀석이 아니었는데 오늘은 달랐다. 개인교습에서의 숙제라고 했다. 맘 속으로는 속이 무척 상했지만 그냥 넘어갔다. 우리 딸 녀석도 그렇게 하게 될지도 모르는데, 현실을 잘 아는데 아이의 마음 상하게 하고 싶지않았다.
새벽 2시에 문자 멧시지로 숙제를 내주고 그날 저녁 학원에서 그 숙제를 검사 한다면 그 숙제를 할 시간은 뻔한 것이다. 아이들이 조용히 숙제에 전념 할 수 있는 시간은 새벽 2시 이후 한 두시간 정도다. 새벽까지 숙제를 하다 겨우 몇 시간 눈 붙이고 힘겹게 일어나 학교에 간다. 하지만 학생들은 공부하는 기계가 아니다. 학교에 도착한 아이들은 부족한 잠으로 인해 매우 피로에 지쳐 있는 상태다. 기계가 아닌 인간이기에 그 부족한 잠을 어디에선가 채워야 하는 데, 그것이 바로 학교에서의 휴식시간 과 수업시간이 된다. 점심 시간 직후의 수업시간은 교사의 입장에서는 투쟁에 가깝다고 말할 수 있다. 온전히 깨어 수업을 듣고 있는 학생의 입장에서도 정말 힘겨운 시간이다.
그런데 피로에 지쳐 밤에 숙제를 하지 못한 학생은 어찌하겠는가? 아이들이 학원에 도착하기 전까지 숙제를 할 수 있는 시간를 확보하는 것은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 이미 엄청나게 선행 학습을 한 아이들에게 정규 교과서 영어는 너무 쉽다. 아니 이미 학원에서 다 배운 내용이다. 그래서 수업을 듣지 않아도 내신 공부하느데 전혀 지장이 없다. 어떤 과목은 내신에도 별로 중요하지 않으며 더 나아가 수능하고는 전혀 관련이 없다. 더군다나 요즈음 아이들은 학교 선생님들을 전혀 무서워 하지도 않는다. 학원 선생님들이 더 무섭다고 하고 더 좋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학원 숙제를 소홀이 하면, 학원에서는 휴대 전화 문자나 전화를 이용해 학부모에게 즉시 알려 부모님들로 부터 책망을 듣게 한다. 이러한 현실속에서 학원 숙제가 밀려 있고 그것을 꼭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학생들의 선택은 뻔한 것이다.
우리나라의 현실 속에서, 그리고 우리 집사람과의 싸움에서 질 수 밖에 없는 상황에서 우리 딸을 학원에 보내고는 있지만, 매일 딸에게 당부하는 한마디가 있다. <학교가 최고이고 학교 선생님이 최고야> 그리고 이런 이야기를 아이들에게 자주 한다. <아빠가 나름대로 열심히 영어 가르치고 있는데 언니나 오빠 학생들이 다른 책 펴놓고 아빠 수업 안 들으면 아빠가 많이 슬프다고...> 우리 딸 녀석이 중학교에 가서 영어 시간에 다른 영어책, 다른 과목책 펴놓고 학원 숙제하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
우리는 지금 우리의 미래의 세대에게 무엇을 가르치고 있는가? 혹시 맹목적으로 대학 진학을 위해 학력 위주로 교육을 하고 있는 동안 아이들에게 정의와 불의와 같은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가치를 가르치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교육도 소비자 중심이 되어야 한다는 이 시대의 사명앞에서 다수의 사람들이 원하는 것이 반드시 정의로운 것이 아닐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외면하는 것은 아닌가? 가치를 지향하는 것이 교육의 본질인데, 혹시 우리는 그 가치를 너무 쉽게 포기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는게 요즈음의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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