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이야기(My Stories)

사람을 생각한다.

etLee 2009. 6. 11. 21:46

 

   얼마전 TV의 한 애완동물 관련 프로그램에서 다친 강아지에 대한 이야기가 있었다. 그 프로의 진행자의 말중에 <-가 좋은 집에 입양되어...>라는 표현이 있었다. 여기에서 '-가'는 분명히 그 다친 유기견을 지칭하는 것이었다. 

 

    PeterPan은 그 표현이 조금 거슬려서 '입양'이라는 단어의 의미를 사전에서 찾아 보았다. 품사는 명사였고 그 뜻은 <양자를 들이거나 양자로 들어감>이라고 풀이 되었다. 법률적인 의미로는 <양친과 양자가 법률적으로 친부모와 친자식의 관계를 맺는 신분 행위>라고 설명되어 있었다. 사전적으로나 법률적으로나 입양이라는 단어는 분명히 사람을 자식으로 받아들이는 법적 행위를 지칭하는 표현으로 동물을 데려다 키우는 행위를 표현하는 것으로는 부적절한 것이다.

 

   사회가 복잡해지고 가족의 형태가 변해가는 현대 우리 사회에 애완동물들을 가져다 마치 가족 구성원 중에 하나로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그래서 일부의 사람들이 자신들이 키우는 애완동물을 거의 사람처럼 대할 뿐만 아니라 그 이상의 존재로 여기는 일이 많아졌다. 확실히 애완동물과 함께 성장한 어린이들이 그렇지 못한 아이들에 비해 정서적으로 안정되고 감정이 더 풍부해 진다는 사실이 인정된다. 홀로 사는 사람들에게 애완동물은 외로움과 고독감을 잊는데 엄청나게 도움이 된다는 것 또한 부인할 수 없다. 그래서 요즈음은 애완 동물을, 인생의 새로운 형태의 반려자라는 의미로서 '반려동물'이라고 지칭하기도 한다.

 

   PeterPan은  오늘 이러한 우리 사회의 유행에 딴지를 걸고 싶다. 애완동물을 인생을 살아가는 새로운 형태의 반려자로 생각하는 것, 동물을 데려다 키우는 행위를 '입양'한다고 하는 표현하는 것, 집에서 키우는 강아지에게 '우리 아들, 딸, 또는 자식이라고 말하는 것, 강아지에게 말을 할때 '엄마가...' 또는 '아빠가...'로 시작하는 것 등에 대해서 뭐라고 딴지 걸고 싶은 생각은 전혀 없다. 애완동물을 키우는 사람이 그렇게 생각하고 그렇게 말하는 것, 모두가 자유 의지로 그러는 것이니 민주사회에서 그런것 까지 간여하려고 하는 시도 자체가 웃기는 일이다. PeterPan이 딴지 걸고 싶은 것은 애완 동물에게 사람들이 대하는 것에 관한 것이 아니라, '사람이 사람을 대하는 모습'에 관한 것이다.

 

    개는 그냥 개에 불과하다. 개가 아무리 소중하다 해도, 그 개가 아무리 주인에게 애정을 주고 따른다 해도, 개는 역시 개다. 절대 사람이 될 수 없다. 단지 우리가 개에게 인격적인 대우를 하는 것일 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정말 못된 사람을 지칭하거나 욕을 할때에 '개XX'라고 하지만, 그렇다고 그사람이 정말 개가 되지는 않는다. 사람은 사람이다. 욕은 할지언정 인격적인 대우는 해야한다. 그것이 바로 개와 사람과의 차이다.

 

   우리는 가끔 사람이 개만도 못한 취급들 당하는 모습을 목격한다. 멱살잡히고 폭력과 모멸을 당하고 밀리고 밟히고... 그리고 버려지고.... IMF경제 위기때인가 보다. 집주인이 보증금 몇십만원을 올려달라고 했는데 그 돈을 구하지 못했서 자살을 했다는 뉴스를 보았는데, 그후 얼마 안지나서 또 다른 TV오락 프로그램에서 애완동물의 수술 치료를 위해 수십에서 100만원이 넘는 비용이 들었다는 이야기를 아무렇지 않게 방영했다. 그리고 그프로그램을 방청했던 청중들은 전적으로 동의하는 모습을 보였다.

 

   PeterPan은 우리사회가 '버림의 문화'가 되어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쓰레기를 버리는 그런 문화가 아니라 그보다 더한 것들, 아주 소중한 것들 까지도 버리는 문화 말이다. 산에가면 여기저기에 버려진 쓰레기들이 곳곳에 널려 있다. 아파트단지내 쓰레기장 근처에는 특히 봄가을 이사철에는 쓸만해 보이는 물건들이 엄청나게 버려져있다. 우리주변 사람들이 모이는 공공장소, 특이 뛰어놀고 휴식을 취할 수 있는 공원에는 그 규모와 상관없이 쓰레기들이 버려진다. PeterPen은 아침에는 밀걸레를 들고 교실바닦을 닥는다. 아이들이 가버리고 빈교실에서는 청소당번 아이들과 빗자루로 교실을 쓴다. 모든 그 많은 쓰레기가 우리 아이들 31명이 버린 것이다.

 

   서울시내 곳곳에서 버려진듯한 강아지들이 많이 발견된다. 우리 아파트 단지 내에도 수없이 많은 고양이들이 야생화되어 밤에 쓰레기 봉투를 헤집고 다닌다. 어떤 사람들은 애완동물로 기르던 외래종 동물들을 별생각 없이, 혹은 불쌍하다고 생각해서 야산이나 강에 풀어주는 경우도 있는것 같다. 그리 멀지 않은 훗날 우리 생태계를 파괴할 가능성이 있다는 생각은 전혀없다. 그런데 그 모든 버려진 것들이 한때에는 그 주인들에게서 엄청난 사랑과 관심을 받았는 사실이다. 그런데도 버림을 당한 것이다.

 

    사람들이 버리고 또 버리다가 마침내 그 버림의 문화가 지금은 도를 넘은것 같다. 자식이 노부모 버리는 일은 이미 흔한 것이 되었고, 이혼하며 버려지는 아이들도 부지기수가 되었다. 갓 태어난 아기들이 사회기관을 통해 버려지더니, 이제는 아무곳에나 버려지는 사건도 가끔 신문 방송 뉴스를 통해 들려온다. 그리고 그 어린 생명은 죽음을 맞이하기도 하고...

 

   PeterPan이 오늘 딴지를 걸고 싶은 것은 바로 이것이다. 사람들이 각자 자신들이 소중하게 여기는 반려동물을 대하듯이 우리 바로 옆에 있는 사람들, 바로 옆의, 소외당하고 힘든 이웃에게도 똑같이 배려하고, 똑같이 대해 달라고 하는 것이다. 그리고 특히 사람이 사람을 버리는 그런 일이 없어져서 소외당하는 사람이 적어지고, 그래서 꽃동네와 같은 시설이 자연히 문을 닫는 그런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말하고 싶었다.

 

   개는 입양하는 것이 아니라 데려다 키우는 것이다. '입양'은 사람이 사람을 데려다 부모 자식의 법률적 정서적 관계를 맺는 것을 표현할 때 쓰는 말이다. 개를 데려다 키우는 것을 '입양한다고' 하면서 고통받는 이웃을 외면하는 우리 사회의 현상이 사라져야 한다. 우리가 이러한 우리 자신의 모습을 계속해서 부인하고 외면한다면, 그러면서도 개를 '입양한다' 라는 표현을 계속해서 사용 한다면, 우리가 반려동물의 지위를 격상시키는 것이 아니라,  우리 자신을 개의 수준으로 전락시키는 것과 마찬가지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