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이야기(My Stories)

세상살기

etLee 2020. 8. 27. 23:18

   태풍 '바비'가 물러갔다. 태풍과 함께 무더위도 물러가기를 바랐지만 그렇지 못했다. 오늘 하루도 정말 무덥고 지루한 하루였다. 더불어 Covid-19에 새롭게 감염된 사람들의 수가 400명이 넘었다는 뉴스에다가 2호선 지하철에서 마스크를 쓰지 않은 사람이 난동을 피우며 다른 승객들을 폭행했다는 소식이 오늘 하루를 더욱더 불쾌하게 만들었다. 어제 밤늦게 의정부에서 1호선을 타고 귀가하는 길에 마스크를 턱밑까지 내리고 큰소리로 전화하는 사람들을 보고 나 역시 불쾌하게 느껴져 한번은 좌석을 바꿔 앉기까지 했다. 대중교통 안에서 마스크를 쓰지 않고 있다가 마스크를 착용해 달라고 말하는 사람들에게 언어적, 물리적 폭행을 가하는 사람들 중 가장 많은 연령층이 60대 이상이고 그다음이 50대라고 한다. 그러고 보니 내가 이 두 연령대의 경계선에 있다.

 

   평생 대중교통만을 이용하면서 살아오면서 수많은 것들을 보고 느끼고 생각하며 살았다. 그중에서 종점에서 버스나 전철을 탈 때 사람들이 보여주는 모습이 가장 흥미롭고, 아무리 세월이 지나도 변치 않는 것 같다. 젊은 날에도 그랬지만 나는 대중교통을 이용할 때 자리에 앉으려고 서두르거나 애쓰지 않는다. 평생 직업이 서서 하는 일이라서 다리에 힘을 잃지 않으려고 달리기를 하거나 등산을 다녔다. 학생 시절에는 나이 든 어른이 버스에 타면 자리 양보를 하기 위해 거의 무의식적으로 벌떡 일어나는 습관이 몸에 배어있었다. 그래서 그런지 지금도 버스나 전철에 앉아 있을 때 나보다 나이 들어 보이거나 어딘가 불편해 보이는 사람이 앞에 서 있으면 그냥 아무 말 없이 일어나서 다른 곳으로 이동한다. 그래야 마음이 편하고, 어차피 내 것도 아니고 잠시 빌려 쓰는 건데 조금 먼저 일어 선들 어떻단 말인가.

 

   사람은 살면서 '염치'라는 것이 있어야 한다. 이 세상 어느 것 하나 빌려 쓰지 않는 게 하나도 없으니까 말이다. 살아가는 시간, 그리고 그 삶을 이어가는 동안 차지해야만 하는 공간까지도 우리는 잠시 조금 빌려 쓰다가 돌려주고 떠나게 된다. 그것도 온전히 돌려줘야 한다. 그래야 다른 생명들이 우리처럼 편하게 살 수 있을 테니까. 자신이 살아온 세상에 해를 가하지 않고, 다른 생명들에게 불편을 끼치지 않게 염치 있게 사는 게 좋은 것 같다. 마찬가지로 산길 갈 때에도, 산바람 쏘이며 잠시 몸 식히다가 자리를 떠날 때에는 뒤에 흔적을 남기지 않아야 한다. 그 자리는 수없이 많은 생명들의 삶의 터전이고 어쩌면 안식처이다. 그리고 또 다른 누군가가 잠시 앉아 쉬어갈 자리이기도 하다. 잠시 스쳐 지나가는 손님이 흔적을 남기면 다른 존재들이 살기에 불편하게 될지도 모르고, 또 다른 손님이 쉬어 갈 수 없게 될 테니까. 

 

   오늘 텔레비전을 보며 깨달은 것이 하나 더 있다. 젊은 날에는 "현재를 잡으려고" 노력하며 살아왔다. 그러나 나이가 드니 내가 잡을 수 있는 현재는 없다는 것이다. 내가 잡는 순간 그것은 이미 과거가 된다. 매 순간이 나에게 다가온다. 그리고 그 매 순간이 현재이고 내가 살아있는 한 그것은 영원하다. 나의 영원이 짧을 수도 있고, 조금 더 길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것도 상관없다. 그냥 염치 있게 살아가는 게 중요하다. 그렇게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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