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하기 전 한 여성을 만났다. 만나서 결혼하고 오늘까지 많은 것들을 바꾸고 타협하고 조정하면서 살았다. 우리 집사람은 집안 대대로 천주교 신자였다. 결혼하기 전 자기와 혼인을 하려면 내가 성당을 다녀야 한다고 말했다. 그래서 그렇게 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나 역시 집사람에게 한 가지 양해를 구했다. 약속을 꼭 지키겠지만 하느님에 대한 나의 생각이 가톨릭의 그것과는 다를지도 모르며 그 점을 이해해 주면 좋겠다고 했다. 결국 우리는 혼인을 했고, 주일 미사에 참여한다는 약속을 지키고 있다.
그런데 요즈음은 그 약속을 지키지 못한다. 지키고 싶어도 그럴 수 없다. 대구시에서 Covid-19가 급격하게 확산되었던 때부터 주일 미사에 참여하지 못했다. 성당에서는 방역 수칙을 준수하기 위해 미사에 참여하는 사람의 수를 철저히 제한하기 때문에 모든 신자들이 미사에 참여할 수 없다. 그래서 미사에 참여하기 위해서는 미사 시작 오래전부터 줄을 서서 기다려야 하고 늦으면 자리가 없어 그냥 집으로 돌아가야 하는 일도 있다. 집사람은 가끔 운 좋게 미사에 참여하기도 했지만 대부분은 촛불 봉헌만 하고 돌아온다. 나는 미사 참여를 당분간 포기했다. 이 시기가 지나면 다시 주일 미사에 참여할 것이다. 그렇게 약속했으니까.
우리 부모님은 종교생활과는 거리가 먼 분이셨다. 어머님께서만 약간 불교적인 성향을 지니고 계시다가 아버님이 돌아가신 후 가끔 절에 가셨던 것 같다. 하지만 나는 신앙으로서 종교보다는, 그냥 어린 시절부터 종교 영화에 관심이 많았고, 영화를 보며 생각하는 것이 늘 좋았다. 그래서 매년 연말, 크리스마스 시즌이 되면 특별 방영되었던 기독교 영화나 관련 다큐 프로그램을 즐겨 봤고, 부처님 오신 날에는 불교 관련 영화 및 다큐 프로그램도 관심 있게 시청했다. 중학교 때에는 기독교 재단의 사립학교라서 1주일 한번 학교 강단에서 예배도 있었고, 평가는 없었지만 주 1시간씩 성경 과목이 있어서 관련 수업을 들었다. 대학에서는 교양 철학 시간에 기독교 철학 부분의 강의를 관심 있게 듣고 공부하기도 했다. 지금도 여전히 종교 관련 영화를 볼 기회가 있으면 마다하지 않는다.
솔직히 말해서 나는 절대자로서의 신의 존재 여부도 잘 모르겠다. 성당을 다니면서 때로는 나름대로 진심을 다해 기도 할 때도 있지만 기도하는 대상이 절대적인 존재라고 여기지도 않는다. 종교도 그렇다. 어떤 특정 종교나 종파가 절대적인 선이나 진리라고 믿고 주장할 수도 있다. 그러나 거기까지다. 그 이상 나가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다. 우리는 종교의 다양성과 종교의 자유를 인정해야 한다. 마찬가지로 자신의 신념이나 믿음을 다른 생각을 하는 사람들에게 강제해서도 안 되며, 그 신념, 믿음에 따른 언행이 다른 사람들에게 정신적인 또는 물리적인 피해를 주는 것도 안 된다. 그런데 요즈음 우리 사회는 그렇지 않은 것 같아서 걱정된다.
어떤 위정자들은 자신들의 생각이나 의견이 절대적인 진리이며 선이고, 그래서 자신들의 생각에 모든 사람들이 전적으로 동의할 것이라고 믿는 것처럼 보이는 것은 물론이고, 더 나아가 자기들 의견에 동의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그들의 언행이 그렇게 생각되게 한다. 단순히 다수를 점유하고 있다는 이유로 말이다. 최근에는 Covid-19 관련 전문가들이 과학적인 이유를 설명하며, 어떤 행동이나 활동은 자제해야 한다고 권유했다. 구체적인 예를 들면서 그 결과의 위험성에 대해서 경고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떤 이들은 자신들의 신념과 믿음에 배치된다고 주장하며 자기 생각대로 행동한 사람들이 있다. 그 결과로 인해 수많은 사람들이 불편을 감수하고 물질적 정신적 피해를 입고는데도, 그렇게 했다. 마치 다른 사람들은 안중에도 없는 것 같다.
햇살 밝은 날 초행길 자동차를 타고 여행하다가 긴 터널을 지나다 보면 항상 경험하는 상황이 있다. 터널 반대편의 모습을 전혀 알 수 없고 예측할 수 없는 그런 상황 말이다. 우리는 단지 터널 저편에 좋은 세상이 펼쳐져 있기를 바라며 앞으로 나간다. 우리가 터널을 벗어나기 전까지는 내가 생각하고 믿는 것이 옳은지 그른지 전혀 알 길이 없다. 사람들은 각자 자기에게 허용된 범위 밖의 세상은 볼 수가 없다. 그래서 자신의 세상에서 살면서 경험하고 배워서 얻어진 생각, 신념이 불변하는 절대적 진리가 아니라, 어느 한순간에 거짓 또는 잘못된 것으로 판명될 수도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그래서 항상 겸손해야 한다. 눈에 보이는 것이 모두 다가 아닌 것처럼 하느님이 진정으로 존재한다면 지금 나 자신이 생각하는 모습의 하느님과는 전혀 다른 하느님일 가능성이 훨씬 더 크다.
허블 망원경으로 바늘귀만한 크기의 공간에 초점을 맞추고 저 멀리 우주 저편을 들여다보기 전까지 우리가 알았던 우주와 지금 알고 있는 우주 모습이 엄청나게 다른 것처럼 각각의 사람들이 생각하는 하느님의 모습과 실제 하느님의 모습은 그 이상으로 다를 것이라고 생각된다. 하느님이 있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