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년은 유별나게도 존경하는 분들이 이 세상을 떠나신다. 김수환 스테파노 추기경의 선종이 그랬고 장영희 선생님의 세상을 등지셨다는 소식이 그렇다. 김수환 추기경님과 나 자신과의 개인적인 인연이래 봤자, 그분께서 명동성당에 계서서 주제하신 미사에 몇번 참가한것이 전부였지만 장영희 교수님과는 개인적으로 연을 맺어서 더욱 더 아쉽고 안타깝게 생각된다.
처음 그분을 만나게 된것은 서강대학교 영문과 사무실에서 였던 것으로 기억된다. 우연히 영문과 사무실에 들어가게 되었는데 어떤 분이 휠체어에 앉아 계시는 것이었다. 그 때에는 그 분에 대해서 아는 것이 전혀 없었고, 누구인지도 몰라서 내심 당황스러웠다. 후에 그분에 대해서 이야기를 통해 하나 하나 알게 되면서 존경하게 되었다. 대학원 2년 6개월 재학 기간중에 그분의 강의를 직접 들을 수는 없었지만 그분의 글과 들여오는 이야기에 늘 관심을 갖게 되었다.
장영희 교수님과의 개인적인 연을 맺게된 것은 짧다면 정말로 잛은 순간이었다. 하지만 그분과의 만남은 내 인생의 중요한 순간으로서 내가 죽어 없어질 때까지 잊지 못할 것이다. 현직 교사로 근무하며 힘들게 완성하게 된 졸업 논문의 심사위원으로서 결정되신 것이다. 우리말로 쓰기도 힘겨운 상황에서 영어로 쓰라는 석사 논문을 힘겹게 힘겹에 완성해서 제출한 나의 논문을 밤새워 읽고서 서슬 퍼런 목소리로 질문을 하시던 모습이 아직도 내 기억에는 생생하다. 그리고 논문을 통과시켜 주시며 한마디 던지신 칭찬의 말씀을 지금도 잊지 못하고 있다. "오래만에 흥미로운 논문 읽었습니다. 참 잘쓰셨어요." 이 한마디 말씀은 지금도 내 석사 논문에 대해 자부심을 갖게한 요인이다.
이후 그분과의 인연이 또 한번 더 있었다. 장영희 교수님께서 주최하신 영문과 후원의 밤을 참여한 일이다. 가수 조영남씨가 초대 되어 노래를 불러 주셨고 박홍 신부님, 김해인 시인님게서 참여하신 행사로 기억되고 있다. 그날 장영희 교수님의 이야기 속에서 내가 느꼈던 것은 서강 대학교를 너무 사랑하신 다는 것, 그리고 삶에 대해 진지하셨고 진실을 엄청나게 사랑하신 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그 두번째의 만남이 나에게 중요한 이유는, 지금도 소중하게 여기는 장영희 교수님의 친필 사인이 있는 수필집을 한권 선물로 받았다는 것이다. 참가자중 일부를 추첨해서 받게 된 것이었는데 내 참가 번호가 우연히 선정되어 너무 기뻐했던 기억이 선하다. 이후 그 책은 내가 가장 소중하게 여기는 책이 되었고, 어쩌면 그 책은 그분과의 인연을 이어주는 징표로서 기억속에 영원히 간직 될 것이다.
나는 가끔 수업시간에 우리 학생들에게 그분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가 있다. 그리고 학생들에게 장영희 교수님을 존경하고 사랑한다고 거침없이 이야기 한곤 했다. 이제 그 분에 대해 아이들에게 어떤 이야기를 하게 될까 생각해 본다. 하지만 아직은 아무런 생각이 떠오르지 않는다. 존경할 만한 분으로서 하지만 옛날에 살았던, 그래서 지금은 이세상에 안계신 위인 혹은 역사적인 인물로 이야기 하기에는 지금의 아이들에게는 너무 추상적인 이야기가 될 것이다. 장영희 교수님은 내가 아이들에게 살아있는 모범으로서 자신있게 이야기 할 수 있었던, 그러면서 나 자신과 직접 연이 닿은 유일한 분이셨는데 그래서 더 슬프고 아쉽다.
내일부터 아이들에게 난 어떤 분의 예들 들어 가며 우리 아이들에게 좌절하지 말고 슬픔에 빠지지 말고 열심히 살라고 말 할 수 있겠는가?
장영희 교수님 정말 감사합니다. 함께 같은 공간 같은 시간을 살면서 사람들에게 용기와 희망을 잃지 않게 하신것 영원히 잊지 못할 것입니다. 함께 살아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리고 사랑합니다.
2009. 5. 12일 밤 10시 교무실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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